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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생각

거제도에서 사온 책, '전시된 마음'

by 탷 2026. 6. 14.

책을 읽을 때 마음이 가는 문장이 있으면 책 귀퉁이를 접고 밑줄을 긋는다. 가끔은 그 옆에 짧게 생각을 적어두기도 한다.

예전에는 책을 깨끗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책은 결국 소모품이라는 말을 본 뒤로는 조금 편해졌다. 어차피 내가 읽으려고 산 책이고, 나중에 다시 펼쳤을 때 그때의 내가 어디에서 멈췄는지 알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전시된 마음'은 작년 거제도 여행 중 책방익힘에서 사온 책이다.


그때 나는 책 두 권을 샀다. 이택민 작가님의 '전시된 마음'과 김져니 작가님의 '나를 아끼는 마음'


두 권 모두 제목부터 나를 한번 더 돌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해서 골랐던 책이다.

거창하게 위로가 필요했다기보다는, 요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쪽에 가까웠다.

 

그 중 먼저 다 읽은 책이 '전시된 마음'이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문장에 표시를 해두었지만, 결국 오래 남은 건 비슷한 결의 문장들이었다.

 - 시작하는 것.
 - 잘하려고만 하지 않는 것.
 -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내려놓는 것.

먼저 오래 멈췄던 문장은 이 문장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이상하게 당연해서 더 아프게 들어오는 말이 있다.
최근에 누군가의 좌우명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슷한 문장이 연달아 내게 걸린 이유는 분명했다.
나도 두려워서 시작하지 않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미루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시작도 못 하고, 막상 시작하려 하면 이게 맞나 싶은 생각에 다시 멈추는 일들이 있었다.
사진도 그랬고, 블로그도 그랬고, 운동도 그랬다.
하고 싶은 마음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 문장이 더 오래 남았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해.”


나는 자주 150%로 해내고 싶어 하다가, 10%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오래 고민하고, 그러다 혼자 지치고, 결국 시작도 못 한 채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잘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블로그도 처음엔 그냥 쓰면 되는 거였고, 운동도 일단 등록하고 가면 되는 거였고, 사진도 찍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거였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기.
요즘 나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그런 쪽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고, 결과를 예상하고 싶어 하고,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오래 붙잡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 번째로 남은 문장은 이쪽이었다.

“이것은 나의 아집이다.”

 

책 속에서는 요가 수련 중 다른 수련생이 소란스럽게 구는 장면이 나온다.

그 사람을 내가 직접 말릴 수도 없고, 상황을 내 뜻대로 바꿀 수도 없다. 그런데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

왜 저러지, 왜 내가 이걸 참고 있어야 하지.

하지만 그 사람과 그 상황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건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다.

그걸 계속 붙잡고 있는건 결국 나였다.


아집 부리지 말고 내려놓기.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책을 읽고 남은 생각은 대단한 깨달음까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알고 있던 말들을 다시 확인한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문장이 필요하다.
알고 있지만 못 하고 있던 것들.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미루고 있던 것들.
내려놓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 붙잡고 있던 것들.

'전시된 마음'을 다 읽고 나서도 책의 모든 내용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다. 대신 몇 개의 문장과, 그 문장 앞에서 멈췄던 내 마음이 남았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내용을 전부 기억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어디에서 멈추는지 확인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거제도에서 사온 책을 한참이 지나서야 다 읽었다.
책은 늦게 읽었지만, 늦게 읽어서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더 잘 닿은 문장들도 있었다.

 

잘하려고만 하지 말고, 일단 해보기.
통제할 수 없는 일은 조금 내려놓기.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 마음을 조금 더 자주 살피기.

 


이 정도면 이 책을 읽은 시간은 충분히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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